아는 게 능력이던 시절이 끝났어요
해결법을 아는 것 자체가 능력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어요. 이미 알려진 해결법의 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의 값은 올라가요.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버려야 할까요.

얼마 전까지 저는 아는 게 곧 능력인 세계에 살았어요.
이걸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 방법을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렸으니까요. 법을 아는 사람, 세무를 아는 사람, 그 나라 말을 아는 사람, 사진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값이었어요.
그 값이 무너졌어요.
이제 웬만한 건 물어보면 나와요. 방법을 아는 데 몇 년 걸리던 게 몇 초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어요. 그러면 사람한테 남는 건 뭐지?
예전에는 순서가 이랬어요
일이 하나 생기면 이렇게 흘렀어요.
| 예전 |
|---|
| 뭔가 잘못됐다 |
| → 이게 무슨 문제인지 이름을 알아야 한다 |
| → 그 이름으로 찾아본다 |
| → 해결법을 이해한다 |
| →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 |
| → 해결 |
가운데 세 칸이 전부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이름을 모르면 검색도 못 했으니까요.
그래서 미리 많이 알아둔 사람이 비쌌어요. 그게 전문가의 정의였고요.
지금은 이렇게 흘러요.
| 지금 |
|---|
| 뭔가 잘못됐다 |
| → 현상을 말로 설명한다 |
| → AI가 이름을 붙이고 방법을 찾아온다 |
| → 만들어본다 |
| → 이게 진짜 해결됐는지 본다 |
| → 아니면 다시 처음으로 |
가운데가 통째로 사라진 게 아니에요. 사람이 하던 자리에서 빠졌을 뿐이에요.
문제는 일상어로도 정의돼요
이게 제일 크게 바뀐 부분 같아요.
예전엔 문제에 이름을 붙일 줄 알아야 했어요. 그 이름을 모르면 아무 데도 못 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돼요.
| 이렇게만 말해도 | AI가 붙이는 이름 |
|---|---|
| “A가 끝나야 B가 시작할 이유가 없는데 왜 하나씩 순서대로 하지? 같이 하면 안 되나?” | 동시 처리 |
| “항상 똑같은 답이 나오는데 왜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지?” | 캐시 |
| “고객이 한 곳 늘 때마다 본체를 고쳐야 하면, 고객이 늘수록 망하는 거 아닌가?” | 확장 구조 |
왼쪽 칸에 전문 지식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한 거예요.
그런데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이제 AI가 놔줘요. 예전엔 그 다리가 사람 머릿속에만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거 어떻게 하죠”보다 “이게 왜 이렇죠”를 더 많이 물어봐요. 답을 정해두고 물으면 그 답으로 끌려가더라고요.)
전문용어는 자격증이 아니라 사전이 됐어요
그렇다고 용어를 아는 게 쓸모없어진 건 아니에요. 역할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용어가 입장권이었어요. 그 말을 알아야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압축 사전에 가까워요.
사람끼리 얘기할 때 “먼저 시작한 게 늦게 끝나서 나중 결과를 덮어쓰는 상황이요”라고 매번 말하는 것보다, 한 단어로 끝내는 게 빠르잖아요.
AI한테는 풀어서 말해도 돼요. 오히려 용어를 잘못 쓰면 엉뚱한 데로 가고요.
그러니까 용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값이 남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칸이 안 넘어가요
여기까지 보면 사람 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 안 그래요.
아까 표의 마지막 칸이요. 이게 진짜 해결됐는지 보는 자리.
저는 이걸 크게 한 번 데이고 나서야 알았어요.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AI에게 나중에 부분부분 갈아 끼울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받아보니 겉모습이 완벽했어요. 검사도 전부 통과했고요.
그런데 막상 한 군데를 갈아 보려니까 전체를 뜯어야 했어요. 겉만 갈아 끼울 수 있는 모양이었고, 속은 한 덩어리였거든요.
시킨 대로 나왔어요. 제가 원한 게 없었을 뿐이에요.
이게 무서운 건, 아무도 안 알려줬다는 거예요. 검사도 통과했고 오류도 없었어요. 그냥 뭘 하나 고칠 때마다 이상하게 오래 걸렸어요. 그게 유일한 힌트였고요.
이건 개발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 그럴듯한데 아닌 것 | 알아채는 사람 |
|---|---|
| 문장은 좋은데 내가 없는 자기소개서 | 나를 아는 사람 |
| 일정표는 완벽한데 동선이 엉킨 여행 계획 | 그 도시를 걸어본 사람 |
| 매끄러운데 중요한 조항이 빠진 계약서 요약 | 그 계약이 어떻게 틀어지는지 본 사람 |
| 숫자는 다 있는데 근거가 없는 사업계획서 | 그 시장에서 한 번 망해본 사람 |
AI는 모르면 멈추지 않아요. 모를수록 더 그럴듯하게 채워요. 그리고 그럴듯하니까 아무도 안 물어보고요.

그리고 더 위가 있어요
지금 터진 문제를 찾는 것보다 한 단계 위가 있어요.
아직 안 터진 문제를 지금 읽어내는 것.
고객사가 세 곳인데 각자 원하는 게 조금씩 다르고, 앞으로 계속 늘 예정이라고 해볼게요.
지금은 아무 문제 없어요. 세 곳쯤은 그때그때 맞춰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는 여기서 이렇게 봐요. “이 방식대로 가면 고객이 서른 곳이 됐을 때 본체가 누더기가 되겠는데.”
이 사람한테 전문 용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끝까지 생각해보면 도달하거든요. 고객별로 다른 부분을 떼어내야 하고, 떼어낸 것과 본체 사이에 약속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 그 약속을 누가 관리하나까지요.
이름은 AI가 붙여줘요. 도달하는 건 사람이 하고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이래요
과거의 전문가는 해결법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어요.
AI 시대의 전문가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이고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거예요.
이미 알려진 해결법의 공급 가격이 0에 가까워질수록,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의 가격은 올라간다.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버려야 하나요
이 질문을 저도 오래 붙잡고 있었어요.
답부터 말하면 절반은 버려야 해요.
제 얘기를 하나 할게요. 예전 직장에서 쓰던 도구에 제약이 하나 있었어요. 어떤 걸 하려면 매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거든요.
그게 제 머릿속에 “원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굳었어요. 십 년 가까이요.
지금 만드는 것에는 그 제약이 없었어요. 훨씬 간단한 방법이 이미 있었고요.
그걸 AI가 알려줬어요.
(엑셀에서 한 시간씩 손으로 하던 걸 누가 옆에서 보고 “그거 기능 하나면 되는데요” 할 때 있잖아요. 딱 그 기분이었어요.)
제 경험이 있지도 않은 제약을 만들어 낸 거예요.
이게 버려야 할 쪽이에요. 방법에 대한 지식이요. 값이 0이 됐는데 붙잡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예요. 내가 아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는 순간, AI한테 그 방법대로 해달라고 시키게 되거든요.
남겨야 할 쪽은 이거예요.
| 버릴 것 | 남길 것 |
|---|---|
| 이걸 어떻게 하는지 | 이게 언제 잘못되는지 |
| 방법의 이름과 절차 | 그 방법이 안 맞는 상황의 냄새 |
|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는 것 | 나온 결과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
왼쪽은 AI가 더 잘해요. 오른쪽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안 생겨요.
그런데 오른쪽은 어디서 오나요
왜 어떤 사람은 20년을 해도 안 늘고, 어떤 사람은 5년 만에 눈이 트일까요.
체스 연구가 힌트를 줘요. 체스 실력을 가장 잘 예측한 건 실제로 둔 판 수가 아니었어요. 혼자 앉아서 국면을 놓고 연구한 시간이었어요.
혼자 연구할 때는 같은 자리에 이 수도 놔보고 저 수도 놔볼 수 있어요. 몇 번이고 되돌릴 수 있고, 어느 쪽이 나은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실전에서는 한 번 둔 수를 되돌릴 수 없고, 상대가 정답을 알려줄 이유도 없고요.
요리로 생각하면 쉬워요. 요리가 느는 건 간을 볼 수 있어서예요. 짜면 바로 알고 다음엔 덜 넣죠. 내가 만든 음식의 맛을 1년 뒤에야 알 수 있다면 20년을 해도 안 늘 거예요.
되돌릴 수 있는 시도 + 바로 오는 채점. 이게 그 능력을 만들어요.
여기서 좀 오싹했어요.
AI는 앞의 것을 거의 공짜로 만들었어요. 열 가지를 만들어보고 전부 버릴 수 있어요.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속도예요.
그런데 뒤의 것을 흐려놨어요. 결과물이 늘 그럴듯하거든요.

이 하나가 꽤 많은 걸 건드려요
이걸 중심에 놓으면 여러 가지가 한 줄로 꿰여요.
교육
학교가 가르치는 건 대체로 “해결법”이에요. 값이 무너진 그것이요.
개념을 순서대로 배우고 마지막에 실습하는 방식은, 개념이 비싸던 시절의 순서예요. 지금은 먼저 만들어보고 막히는 데서 배우는 쪽이 더 맞을 수 있어요. 문제부터 만나니까요.
개발자라는 말
“AI만 써서 만드는 사람도 개발자냐”는 논쟁이 있어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답이 쉬워져요. 코드를 직접 타이핑했느냐가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시스템을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꿀 수 있느냐요.
반대로 문법과 이론을 많이 알아도 주어진 것만 만들고 끝나면, 그건 값이 떨어지는 쪽에 서 있는 거고요.
면접
“AI 쓰지 마세요”라고 막아놓고 보는 시험은 실제 일과 멀어졌어요. 실무에서는 다 쓰니까요.
차라리 다 열어두고, 문제지에 안 적힌 걸 얼마나 발견했는지를 보는 게 맞아요. 다 찾아야 합격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가 변별점이고요.
(실제로 큰 회사들이 이미 그쪽으로 옮기고 있어요. 다만 채점 항목에 “검증”을 따로 넣어두더라고요.)
조직
예전엔 지식을 늘리려면 사람을 늘려야 했어요. 전문가 한 명, 중급자 열 명, 초급자 서른 명 식으로 같은 지식을 사람에게 복제했죠.
가운데를 시스템이 맡으면 그 전제가 깨져요. 기준을 만드는 소수와, 그 기준 위에서 일하는 다수로 갈릴 수 있어요.
전문성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반복 구현에서 기준 설계로 옮겨가는 거예요.
경력
이게 제일 불편한 부분이에요.
예전 경력은 계단이었어요. 한 가지를 오래 해서 숙련되면 그게 희소성이 됐죠.
지금은 숙련될수록 그걸 AI에게 넘기게 돼요. 그리고 다음 병목으로 옮겨가고요. 자기가 잘하게 된 일을 계속 넘기는 게 성장이 되는 거예요.
이건 기존 직업관과 정면으로 부딪혀요. 어렵게 배운 걸 넘길수록 지금의 내 희소성이 줄어드니까요.
(그래서 AI에 대한 거부감이 꼭 몰라서 생기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잘 이해할수록 결론이 자기 자산의 평가절하라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걱정되는 게 하나 있어요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비싸진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여요.
그건 어디서 길러지나요?
지금까지는 아래에서 올라오면서 만들어졌어요. 신입 변호사가 계약서를 백 장 검토하다가 빨간 줄을 받으면서. 수련의가 오진을 하고 지적받으면서. 틀려보고, 지적받고, 왜 틀렸는지 배우면서요.
그런데 그 “백 장 검토”를 지금 AI가 하고 있어요.
미국의 이력서와 채용 공고를 6,200만 명 규모로 본 연구가 있어요. AI를 도입한 기업에서 신입 채용이 1년 반 만에 7.7% 줄었어요. 경력자 채용은 거의 안 움직였고요.
각 회사 입장에선 합리적이에요. 신입을 3년 키우는 것보다 경력자를 데려오는 게 싸니까요.
그런데 경력자는 다른 회사가 키운 신입이에요. 전부가 동시에 키우기를 멈추고 데려오기만 하면, 데려올 곳이 없어져요.
제가 틀렸다고 인정할 조건
(솔직히 이런 글은 결론이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로 가기 쉽잖아요. 그게 자기한테 유리한 결론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나. 주문서 없이도 “이건 원하던 게 아니다”를 잡아내는 도구가 나오면, 이 글의 절반은 틀린 거예요.
둘. 처음부터 AI로 시작한 사람들이 3~5년 뒤에 기존 경로로 자란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면, 제 걱정은 그냥 세대 차이였던 거고요.
셋. 이미 제게 불리한 자료도 있어요. AI 도구의 효과를 잰 실험들에서 이득은 대체로 경력이 짧은 쪽에서 더 컸어요. “경험이 많을수록 AI로 더 큰 레버리지를 얻는다”는 제 직감과 반대 방향이에요.
그래도 저는 이 쪽에 걸고 있어요.
배우지 않으면 만들 수 없던 시대에서, 먼저 만들 수 있고 만들다가 배우는 시대로 넘어왔어요.
그러면 값이 붙는 자리도 옮겨가는 게 자연스럽죠. 아는 것에서,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것으로요.
그런데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더 불편한 질문이 하나 남았어요.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게 그렇게 값진 능력이라면 우리는 그걸 값 매길 줄 아나요?
저는 프론트엔드가 두 명인데 한 명이면 되는 팀에서 그 질문을 만났어요. 그 이야기는 일을 없앤 사람은 어떻게 평가받나에 적어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