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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능력이던 시절이 끝났어요

해결법을 아는 것 자체가 능력이던 시대가 저물고 있어요. 이미 알려진 해결법의 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의 값은 올라가요.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버려야 할까요.

2026. 08. 07. 18:02:329분 읽기AI 개발/칼럼
#AI 개발
조회 42
전부 초록불인 화면 뒤로 어긋난 구조가 보이는 일러스트
시킨 대로 나왔는데, 원한 게 아닐 때가 있어요

얼마 전까지 저는 아는 게 곧 능력인 세계에 살았어요.

이걸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 방법을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렸으니까요. 법을 아는 사람, 세무를 아는 사람, 그 나라 말을 아는 사람, 사진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값이었어요.

그 값이 무너졌어요.

이제 웬만한 건 물어보면 나와요. 방법을 아는 데 몇 년 걸리던 게 몇 초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있어요. 그러면 사람한테 남는 건 뭐지?

예전에는 순서가 이랬어요

일이 하나 생기면 이렇게 흘렀어요.

예전
뭔가 잘못됐다
→ 이게 무슨 문제인지 이름을 알아야 한다
→ 그 이름으로 찾아본다
→ 해결법을 이해한다
→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
→ 해결

가운데 세 칸이 전부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이름을 모르면 검색도 못 했으니까요.

그래서 미리 많이 알아둔 사람이 비쌌어요. 그게 전문가의 정의였고요.

지금은 이렇게 흘러요.

지금
뭔가 잘못됐다
→ 현상을 말로 설명한다
→ AI가 이름을 붙이고 방법을 찾아온다
→ 만들어본다
→ 이게 진짜 해결됐는지 본다
→ 아니면 다시 처음으로

가운데가 통째로 사라진 게 아니에요. 사람이 하던 자리에서 빠졌을 뿐이에요.

문제는 일상어로도 정의돼요

이게 제일 크게 바뀐 부분 같아요.

예전엔 문제에 이름을 붙일 줄 알아야 했어요. 그 이름을 모르면 아무 데도 못 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돼요.

이렇게만 말해도AI가 붙이는 이름
“A가 끝나야 B가 시작할 이유가 없는데 왜 하나씩 순서대로 하지? 같이 하면 안 되나?”동시 처리
“항상 똑같은 답이 나오는데 왜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지?”캐시
“고객이 한 곳 늘 때마다 본체를 고쳐야 하면, 고객이 늘수록 망하는 거 아닌가?”확장 구조

왼쪽 칸에 전문 지식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한 거예요.

그런데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이제 AI가 놔줘요. 예전엔 그 다리가 사람 머릿속에만 있었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거 어떻게 하죠”보다 “이게 왜 이렇죠”를 더 많이 물어봐요. 답을 정해두고 물으면 그 답으로 끌려가더라고요.)

전문용어는 자격증이 아니라 사전이 됐어요

그렇다고 용어를 아는 게 쓸모없어진 건 아니에요. 역할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용어가 입장권이었어요. 그 말을 알아야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압축 사전에 가까워요.

사람끼리 얘기할 때 “먼저 시작한 게 늦게 끝나서 나중 결과를 덮어쓰는 상황이요”라고 매번 말하는 것보다, 한 단어로 끝내는 게 빠르잖아요.

AI한테는 풀어서 말해도 돼요. 오히려 용어를 잘못 쓰면 엉뚱한 데로 가고요.

그러니까 용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값이 남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칸이 안 넘어가요

여기까지 보면 사람 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 안 그래요.

아까 표의 마지막 칸이요. 이게 진짜 해결됐는지 보는 자리.

저는 이걸 크게 한 번 데이고 나서야 알았어요.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AI에게 나중에 부분부분 갈아 끼울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받아보니 겉모습이 완벽했어요. 검사도 전부 통과했고요.

그런데 막상 한 군데를 갈아 보려니까 전체를 뜯어야 했어요. 겉만 갈아 끼울 수 있는 모양이었고, 속은 한 덩어리였거든요.

시킨 대로 나왔어요. 제가 원한 게 없었을 뿐이에요.

이게 무서운 건, 아무도 안 알려줬다는 거예요. 검사도 통과했고 오류도 없었어요. 그냥 뭘 하나 고칠 때마다 이상하게 오래 걸렸어요. 그게 유일한 힌트였고요.

이건 개발만의 얘기가 아니에요.

그럴듯한데 아닌 것알아채는 사람
문장은 좋은데 내가 없는 자기소개서나를 아는 사람
일정표는 완벽한데 동선이 엉킨 여행 계획그 도시를 걸어본 사람
매끄러운데 중요한 조항이 빠진 계약서 요약그 계약이 어떻게 틀어지는지 본 사람
숫자는 다 있는데 근거가 없는 사업계획서그 시장에서 한 번 망해본 사람

AI는 모르면 멈추지 않아요. 모를수록 더 그럴듯하게 채워요. 그리고 그럴듯하니까 아무도 안 물어보고요.

같은 한 수가 두 갈래로 갈리는 일러스트
같은 한 수가 정답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정반대로 갈립니다

그리고 더 위가 있어요

지금 터진 문제를 찾는 것보다 한 단계 위가 있어요.

아직 안 터진 문제를 지금 읽어내는 것.

고객사가 세 곳인데 각자 원하는 게 조금씩 다르고, 앞으로 계속 늘 예정이라고 해볼게요.

지금은 아무 문제 없어요. 세 곳쯤은 그때그때 맞춰주면 되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는 여기서 이렇게 봐요. “이 방식대로 가면 고객이 서른 곳이 됐을 때 본체가 누더기가 되겠는데.”

이 사람한테 전문 용어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끝까지 생각해보면 도달하거든요. 고객별로 다른 부분을 떼어내야 하고, 떼어낸 것과 본체 사이에 약속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 그 약속을 누가 관리하나까지요.

이름은 AI가 붙여줘요. 도달하는 건 사람이 하고요.

깊은 층의 균열이 맨 위층에 작은 흔적으로 올라오는 지층 일러스트
지금 보이는 작은 흔적이 몇 년 뒤의 큰 균열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이래요

과거의 전문가는 해결법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어요.

AI 시대의 전문가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이고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거예요.

이미 알려진 해결법의 공급 가격이 0에 가까워질수록,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의 가격은 올라간다.

그럼 지금까지 배운 건 버려야 하나요

이 질문을 저도 오래 붙잡고 있었어요.

답부터 말하면 절반은 버려야 해요.

제 얘기를 하나 할게요. 예전 직장에서 쓰던 도구에 제약이 하나 있었어요. 어떤 걸 하려면 매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거든요.

그게 제 머릿속에 “원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굳었어요. 십 년 가까이요.

지금 만드는 것에는 그 제약이 없었어요. 훨씬 간단한 방법이 이미 있었고요.

그걸 AI가 알려줬어요.

(엑셀에서 한 시간씩 손으로 하던 걸 누가 옆에서 보고 “그거 기능 하나면 되는데요” 할 때 있잖아요. 딱 그 기분이었어요.)

제 경험이 있지도 않은 제약을 만들어 낸 거예요.

이게 버려야 할 쪽이에요. 방법에 대한 지식이요. 값이 0이 됐는데 붙잡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예요. 내가 아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는 순간, AI한테 그 방법대로 해달라고 시키게 되거든요.

남겨야 할 쪽은 이거예요.

버릴 것남길 것
이걸 어떻게 하는지이게 언제 잘못되는지
방법의 이름과 절차그 방법이 안 맞는 상황의 냄새
내가 직접 할 수 있다는 것나온 결과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왼쪽은 AI가 더 잘해요. 오른쪽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안 생겨요.

그런데 오른쪽은 어디서 오나요

왜 어떤 사람은 20년을 해도 안 늘고, 어떤 사람은 5년 만에 눈이 트일까요.

체스 연구가 힌트를 줘요. 체스 실력을 가장 잘 예측한 건 실제로 둔 판 수가 아니었어요. 혼자 앉아서 국면을 놓고 연구한 시간이었어요.

혼자 연구할 때는 같은 자리에 이 수도 놔보고 저 수도 놔볼 수 있어요. 몇 번이고 되돌릴 수 있고, 어느 쪽이 나은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실전에서는 한 번 둔 수를 되돌릴 수 없고, 상대가 정답을 알려줄 이유도 없고요.

요리로 생각하면 쉬워요. 요리가 느는 건 간을 볼 수 있어서예요. 짜면 바로 알고 다음엔 덜 넣죠. 내가 만든 음식의 맛을 1년 뒤에야 알 수 있다면 20년을 해도 안 늘 거예요.

되돌릴 수 있는 시도 + 바로 오는 채점. 이게 그 능력을 만들어요.

여기서 좀 오싹했어요.

AI는 앞의 것을 거의 공짜로 만들었어요. 열 가지를 만들어보고 전부 버릴 수 있어요.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속도예요.

그런데 뒤의 것을 흐려놨어요. 결과물이 늘 그럴듯하거든요.

되돌리기 표가 산더미인데 채점표는 비어 있는 일러스트
시도는 무한히 싸졌는데, 간을 보기가 어려워졌어요

이 하나가 꽤 많은 걸 건드려요

이걸 중심에 놓으면 여러 가지가 한 줄로 꿰여요.

교육

학교가 가르치는 건 대체로 “해결법”이에요. 값이 무너진 그것이요.

개념을 순서대로 배우고 마지막에 실습하는 방식은, 개념이 비싸던 시절의 순서예요. 지금은 먼저 만들어보고 막히는 데서 배우는 쪽이 더 맞을 수 있어요. 문제부터 만나니까요.

개발자라는 말

“AI만 써서 만드는 사람도 개발자냐”는 논쟁이 있어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답이 쉬워져요. 코드를 직접 타이핑했느냐가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시스템을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꿀 수 있느냐요.

반대로 문법과 이론을 많이 알아도 주어진 것만 만들고 끝나면, 그건 값이 떨어지는 쪽에 서 있는 거고요.

면접

“AI 쓰지 마세요”라고 막아놓고 보는 시험은 실제 일과 멀어졌어요. 실무에서는 다 쓰니까요.

차라리 다 열어두고, 문제지에 안 적힌 걸 얼마나 발견했는지를 보는 게 맞아요. 다 찾아야 합격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가 변별점이고요.

(실제로 큰 회사들이 이미 그쪽으로 옮기고 있어요. 다만 채점 항목에 “검증”을 따로 넣어두더라고요.)

조직

예전엔 지식을 늘리려면 사람을 늘려야 했어요. 전문가 한 명, 중급자 열 명, 초급자 서른 명 식으로 같은 지식을 사람에게 복제했죠.

가운데를 시스템이 맡으면 그 전제가 깨져요. 기준을 만드는 소수와, 그 기준 위에서 일하는 다수로 갈릴 수 있어요.

전문성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반복 구현에서 기준 설계로 옮겨가는 거예요.

경력

이게 제일 불편한 부분이에요.

예전 경력은 계단이었어요. 한 가지를 오래 해서 숙련되면 그게 희소성이 됐죠.

지금은 숙련될수록 그걸 AI에게 넘기게 돼요. 그리고 다음 병목으로 옮겨가고요. 자기가 잘하게 된 일을 계속 넘기는 게 성장이 되는 거예요.

이건 기존 직업관과 정면으로 부딪혀요. 어렵게 배운 걸 넘길수록 지금의 내 희소성이 줄어드니까요.

(그래서 AI에 대한 거부감이 꼭 몰라서 생기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잘 이해할수록 결론이 자기 자산의 평가절하라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걱정되는 게 하나 있어요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비싸진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여요.

그건 어디서 길러지나요?

지금까지는 아래에서 올라오면서 만들어졌어요. 신입 변호사가 계약서를 백 장 검토하다가 빨간 줄을 받으면서. 수련의가 오진을 하고 지적받으면서. 틀려보고, 지적받고, 왜 틀렸는지 배우면서요.

그런데 그 “백 장 검토”를 지금 AI가 하고 있어요.

미국의 이력서와 채용 공고를 6,200만 명 규모로 본 연구가 있어요. AI를 도입한 기업에서 신입 채용이 1년 반 만에 7.7% 줄었어요. 경력자 채용은 거의 안 움직였고요.

각 회사 입장에선 합리적이에요. 신입을 3년 키우는 것보다 경력자를 데려오는 게 싸니까요.

그런데 경력자는 다른 회사가 키운 신입이에요. 전부가 동시에 키우기를 멈추고 데려오기만 하면, 데려올 곳이 없어져요.


제가 틀렸다고 인정할 조건

(솔직히 이런 글은 결론이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로 가기 쉽잖아요. 그게 자기한테 유리한 결론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나. 주문서 없이도 “이건 원하던 게 아니다”를 잡아내는 도구가 나오면, 이 글의 절반은 틀린 거예요.

둘. 처음부터 AI로 시작한 사람들이 3~5년 뒤에 기존 경로로 자란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면, 제 걱정은 그냥 세대 차이였던 거고요.

셋. 이미 제게 불리한 자료도 있어요. AI 도구의 효과를 잰 실험들에서 이득은 대체로 경력이 짧은 쪽에서 더 컸어요. “경험이 많을수록 AI로 더 큰 레버리지를 얻는다”는 제 직감과 반대 방향이에요.

그래도 저는 이 쪽에 걸고 있어요.

배우지 않으면 만들 수 없던 시대에서, 먼저 만들 수 있고 만들다가 배우는 시대로 넘어왔어요.

그러면 값이 붙는 자리도 옮겨가는 게 자연스럽죠. 아는 것에서,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것으로요.


그런데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더 불편한 질문이 하나 남았어요.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게 그렇게 값진 능력이라면 우리는 그걸 값 매길 줄 아나요?

저는 프론트엔드가 두 명인데 한 명이면 되는 팀에서 그 질문을 만났어요. 그 이야기는 일을 없앤 사람은 어떻게 평가받나에 적어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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