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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는 한 명이면 됩니다

화면을 만드는 사람에서 화면을 만드는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으로 옮겨왔어요. AI가 그 이동 비용을 무너뜨렸고요. 그런데 그 자리는 한 명이면 됩니다. 올라간 걸까요, 계단을 치운 걸까요.

2026. 08. 13. 11:13:037분 읽기AI 개발/칼럼
#AI 개발
조회 30
계단이 사라진 높은 발판 위에 혼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
올라간 걸까요, 밟고 온 걸 치운 걸까요

“요즘 무슨 일 하세요?”

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하겠어요.

“프론트엔드 개발합니다”라고 하면 거짓말 같아요. 요즘 제가 직접 쓰는 화면 코드는 별로 없거든요.

“AI로 개발합니다”라고 하면 너무 작아 보이고요. 그건 도구 이야기지 제가 한 일이 아니니까요.

“개발을 자동화했습니다”도 어딘가 부족해요.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게 계속 걸렸어요. 그래서 정리해봤어요.

제가 있던 자리가 옮겨갔더라고요

프론트엔드 일을 네 칸으로 나눠볼 수 있어요.

하는 일산출물
1디자인 보고 화면을 만든다화면 하나
2반복되는 걸 컴포넌트로 뽑는다재사용 부품
3디자인 시스템과 규칙을 세운다팀이 따르는 기준
4디자인과 기획을 넣으면 알아서 만들어지게 한다만드는 시스템

저는 오래 1번에 있었어요. 그게 일이었고, 시간도 제일 많이 들었고요.

지금은 4번에 있어요.

디자인과 기획만 들어오면 우리 팀 컨벤션과 코드 스타일에 맞춰서 구현되고, 테스트까지 돌아가요. 제가 하는 일은 그 시스템이 무엇을 옳다고 판정할지 정하는 것이고요.

위로 갈수록 계단참은 넓어지고 사람 수는 줄어드는 네 칸 계단
위 칸으로 갈수록 자리는 넓어지는데, 서 있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예전엔 4번이 너무 멀었어요

4번이 새로 생긴 칸은 아니에요. 원래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 가려면 도구를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코드 생성기를 짜거나, 규칙 검사기를 만들거나, 테스트 기반을 깔거나, 사내 플랫폼을 세우거나요.

그건 그 자체로 대규모 개발이었어요. 몇 달짜리 프로젝트고, 팀을 따로 꾸려야 하고, 그럴 만한 회사여야 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개발자는 평생 1번과 2번 사이에 있었어요. 3번까지 가면 잘 풀린 경력이었고요.

AI가 바꾼 게 이거예요.

코딩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니라, 4번으로 가는 비용이 무너졌어요.

(이게 “Copilot 쓰니까 30% 빨라졌어요”와 다른 이야기인 이유예요. 속도가 아니라 갈 수 있는 칸이 늘어난 거니까요.)

그리고 개발자는 원래 이 이동이 쉬운 직업이에요

이걸 깨닫고 좀 놀랐어요.

대부분의 직업은 자기 일을 자동화하려면 직업을 한 번 나가야 해요.

자기 일을 자동화하려면
회계사회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함 — 다른 직업이 됨
디자이너디자인 도구를 만들어야 함 — 다른 직업이 됨
물류 담당창고 로봇을 만들어야 함 — 다른 직업이 됨
개발자그냥 코드를 쓰면 됨 — 같은 직업

개발자는 일하는 재료와 도구를 만드는 재료가 같아요. 둘 다 소프트웨어니까요.

“이거 매번 반복하네”라고 느낀 그 자리에서 바로 스크립트를 쓰고, 그게 명령어가 되고, 도구가 되고, 검사에 들어가고, 결국 업무 자체가 시스템이 돼요. 중간에 직업을 갈아탈 필요가 없어요.

자기 망치로 새 망치를 만드는 대장장이와, 사 온 연장을 든 다른 직업들
자기 연장으로 자기 연장을 만들 수 있는 직업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대장장이 같은 거예요. 다른 장인들은 연장을 사 와야 하는데, 대장장이는 자기 망치로 새 망치를 만들 수 있잖아요.

AI는 그 대장간의 불을 훨씬 세게 만든 거고요.

그러면 던지는 질문이 바뀌어요

칸이 올라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때 던지는 질문
1이걸 어떻게 잘 만들지?
2이걸 어떻게 다시 쓸 수 있게 만들지?
3우리 팀이 따를 기준은 뭐지?
4왜 이걸 사람이 만들어야 하지?

마지막 질문이 좀 무섭죠. 그런데 그게 4번 칸의 일이에요.

그리고 그다음 질문은 이거고요. 무엇을 입력하고 무엇을 금지하면, 결과가 안정적으로 나올까?

그러니까 제가 하네스에 넣은 건 코드가 아니에요. “우리 팀에서 괜찮은 코드란 무엇인가”를 기계가 판정할 수 있는 형태로 적은 것이에요.

그런데 회사는 여전히 화면을 세요

여기서 설명이 막혀요.

제 산출물이 바뀌었거든요.

예전 산출물지금 산출물
형태화면 A, 화면 B, 화면 C화면 A부터 Z까지를 만들어내는 틀
세는 방법개수를 세면 됨세는 칸이 없음
종이를 한 장씩 그리는 사람과 틀을 깎는 사람, 그리고 종이 장수만 세는 장부
장부에는 종이를 세는 칸만 있고, 틀을 세는 칸은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틀을 깎아요. 틀에서는 종이가 계속 나오고요.

그런데 장부에는 종이를 세는 칸만 있어요.

그래서 틀을 깎은 사람은 그 분기에 종이를 몇 장 안 그린 사람이 돼요.

숫자로 증명하려다 한 번 실패했어요

그래서 계산을 해봤어요. 원래 이만큼 걸리던 게 이만큼이 됐으니 몇 시간을 아꼈고, 1년에 몇 번 쓰이니까 곱하면 얼마다.

적어놓고 보니 제가 봐도 못 믿겠더라고요.

그 계산의 문제
“원래 이만큼 걸렸다”그 추정을 제가 해요. 안 해본 쪽은 아무도 못 봐요
“1년에 몇 번 쓰인다”그건 만들 게 그만큼 있었다는 뜻이지 제 공로가 아니에요
유지 비용틀도 낡아요. 그 비용은 계산에 없었어요
최악이 계산은 원래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뒀을수록 커져요

마지막 줄이 제일 뜨끔했어요. 절감액으로 증명하려 들면, 먼저 엉망으로 만들어 두는 게 유리해져요.

그래서 그 계산을 버렸어요. 대신 제가 못 정하는 숫자만 보기로 했어요.

보기로 한 것왜 이건 못 속이나
요청이 들어와서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제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되돌리거나 다시 만든 비율품질이 나쁘면 올라가요
사람이 손대야 했던 비율시스템이 부실하면 올라가요

셋 다 제 노력이 아니라 흐름을 재요. 그리고 개발을 모르는 사람도 읽을 수 있고요.

그럼 이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요즘 이런 걸 AX라고 부르더라고요. AI로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한다는 뜻으로요.

저는 처음에 이게 컨설팅이 파는 유행어인 줄 알았어요. 틀렸어요.

찾아보니 이미 채용 시장의 말이 돼 있었어요. 대기업 ICT 부문이 AX 대규모 채용을 하면서 사이닝 보너스를 걸고, 통신사는 “AX사업”이라는 조직 이름으로 사람을 뽑고, 채용 플랫폼은 AX 전용 페이지를 따로 운영해요.

직업 이름은 스스로 붙인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시장이 그 이름으로 사람을 찾고 값을 매길 때 생기는데, 그건 이미 일어나 있었어요.

그런데 공고를 뜯어보니 재밌는 게 있었어요.

실제로 쓰이는 방식
AX주로 조직 이름 · 사업 이름
그 안의 직무명AI 엔지니어, 플랫폼 엔지니어, 데이터 엔지니어…

어떤 통신사 공고는 제목이 아예 “AX사업 · AI 플랫폼 엔지니어”예요. 두 이름이 경쟁하는 게 아니라 겹쳐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했어요. AX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말하고, 플랫폼 엔지니어링은 무엇을 하는지를 말해요.

(그래서 요즘은 “AX 쪽에서 프론트엔드 개발 프로세스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해요. 길지만 되묻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다만 이름을 찾고 나서도 문제는 그대로 남았어요.

뭐라고 불리든, 회사 장부에는 여전히 종이를 세는 칸만 있거든요. 이름이 바뀐다고 세는 칸이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그 자리는 한 명이면 됩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좀 조용해졌어요.

이 글이 “저는 올라갔습니다”로 읽힐 것 같아서요. 그런데 계산을 해보면 그게 아니에요.

네 칸짜리 계단을 다시 볼게요. 위로 갈수록 자리가 넓어지는데, 서 있어야 할 사람은 줄어들어요.

1번 칸은 화면 수만큼 사람이 필요했어요. 화면이 서른 개면 여러 명이 나눠서 했고요.

4번 칸은 몇 명이 필요할까요.

한 명이면 돼요. 틀을 두 사람이 깎을 이유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4번으로 올라간 게 사실이라 해도, 그건 올라간 게 아니라 계단을 치운 것일 수도 있어요. 제가 밟고 온 칸들을요.

“AI 덕분에 누구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요즘 많은데, 저는 여기서 걸려요. 될 수 있는 자리가 하나뿐이면, 그건 누구나가 아니잖아요.

제 옆자리 사람은 이 이야기 어디에 있나요. 저는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제가 틀렸다면 이런 모습일 거예요

하나. 만들 것이 계속 늘어나면 위 칸도 여러 명이 필요해져요. 틀 하나로 안 되고 틀을 계속 새로 깎아야 하니까요. 회사에 만들 게 무한하면 이 글은 기우예요. 다만 목록이 정해져 있으면 아니고요.

둘. 위 칸이 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갈 수도 있어요. 틀은 계속 낡고, 예외는 계속 들어오고, 판정 기준은 계속 바뀌어요. 2년 뒤에도 제가 이 시스템을 혼자 못 돌보고 있으면, 한 명이면 된다는 말이 틀린 거예요.

셋. 그리고 솔직히 이 글도 제게 유리한 구석이 있어요. “저는 4번 칸에 있습니다”는 어쨌든 제 자리를 방어하는 문장이니까요. 다만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마지막 절을 넣었어요.

이 이야기는 세 편째예요.

첫 편은 AI 시대에 남는 능력이 무엇인가였고, 둘째 편은 그 능력을 값 매길 줄 모른다는 이야기였어요.

이번 편은 그 능력이 있는 자리가 몇 개인가에 대한 이야기고요. 셋 다 답은 못 냈는데, 질문은 점점 선명해지네요.


이 글을 쓰고 나서 남은 질문은 하나였어요.

그 자리에 설 사람은 무엇을 배워야 거기 설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는 외울 필요는 없는데, 겪을 필요는 있어요에 적어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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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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