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만 남았습니다 — 리뉴얼 0편
모니터가 꺼진 책상이 하나씩 늘더니, 2025년 6월엔 저만 남았어요. 그런데 리뉴얼은 이미 시작돼 있었죠. 도망칠 명분은 충분했는데 — 안 도망친 이야기의 0편이에요.

모니터가 꺼진 책상이 하나씩 늘었어요. 처음엔 한 자리, 다음 달엔 두 자리.
2025년 6월, 마지막 남은 프론트엔드 동료가 떠났습니다. 이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코드를 아는 사람은, 이제 저 하나였어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요. 두 달 전에 우리는 이 제품을 처음부터 다시 짓기로 결정해 둔 상태였습니다.
"우리"가요. 이제는 없는, 그 우리가.
도망칠 명분은 충분했어요
리뉴얼을 접어도 아무도 저를 비난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이 없잖아요." 이 한마디면 끝나는 일이었죠.
낡은 코드를 살살 달래면서 충원 공고가 뜨기를 기다리면 됐어요. 그게 정상적인 어른의 선택이고요.
실제로 며칠은 그 계산을 했어요. 유지보수로 버티는 몇 년과, 혼자 새로 짓는 1년. 어느 쪽이 덜 망하는 길인가.
그런데 계산할수록 이상했어요. 저는 그 낡은 코드베이스로 돌아가는 쪽이 더 무서웠거든요.
class 컴포넌트로 가득한 이전 세대의 코드. 열 때마다 어디가 부러질지 모르고, 한 곳을 고치면 다른 곳이 주저앉는 코드. 거기서 앞으로 몇 년을 보낸다고 상상하니까 — 답이 나왔습니다.
(그 코드를 짠 분들을 욕하는 게 아니에요. 몇 년 뒤의 누군가에겐 제 코드도 그렇게 보일 테니까요. 코드는 원래 그렇게 늙습니다.)
혼자라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할게요. 무서웠어요. 밤에 잠이 잘 안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묘한 걸 발견했습니다. 회의가 없어요. 설득할 사람이 없어요. "이렇게 갑시다"라고 말하면 — 끝. 그게 팀의 결정이에요.
결정 비용이 0원이 되니까 실험 비용도 같이 떨어졌어요. 넣었다가, 아니다 싶으면 빼고. 만들었다가, 더 나은 게 보이면 부수고.
(물론 부순 것들 앞에서 혼자 잠깐 묵념은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게 이 리뉴얼의 진짜 무기가 됩니다. 잘 만드는 능력보다 빨리 되돌리는 능력이요. 4개월 쓴 상용 라이브러리를 벤치마크 한 방으로 걷어낸 것도, 제가 설계한 아키텍처에 제 손으로 사망 선고를 내린 것도, 전부 이 조건 덕에 가능했어요.
손은 하나인데, 일은 팀의 몫이라서
물론 낭만은 여기까지고요. 결정이 아무리 빨라도 코드 치는 손은 두 개예요. 팀이 하던 일을 혼자 하려면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 시기에 AI에게 일을 통째로 맡기는 방식으로 갈아탔어요. 자동완성 수준이 아니라, 동료 수준으로요.
(개인 계정을 제 돈 주고 결제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어요.)
이 이야기는 따로 연재가 통째로 하나 있어요 — AI 툴 유목민 일지. 이 시리즈에서는 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 쪽을 다룹니다.
1년 뒤, 이렇게 됐습니다
커밋 3,388개. 워크스페이스 패키지 19개. TS/TSX 파일 약 6,100개. 테스트 파일 1,051개.
숫자만 보면 순탄해 보이죠. 아니에요. 이 안에는 4개월 쓰고 버린 라이브러리가 있고, 상당 부분 구현까지 갔다가 폐기된 중간 아키텍처가 있고, "일단 같이 두고 점진적으로"를 금지한 독한 규율이 있어요.
잘한 결정보다, 되돌린 결정이 더 많이 나오는 시리즈예요. 그리고 그게 자랑이라는 걸, 끝까지 읽으시면 동의하게 되실 거예요.
첫 화부터 이상한 자랑으로 시작할게요. 저희 레포에는 클래스 컴포넌트가 0개예요. 왜 0개여야 했는지 — 다음 편에서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