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배웠는지가 왜 실력의 기준이 되는가
필요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내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면, 왜 반드시 미리 알고 있어야 할까요? AI 시대의 역량 평가와 회사의 지식을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선임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AI로 일을 끝낸 개발자에게 누군가 묻는다.
“그런데 이거, 원래 알고 있었어요?”
질문의 목적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었는지, 중요한 예외를 확인했는지 묻는 것이라면 필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필요한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확보하고 결과까지 확인했는데,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가 달라진다면 기준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평가하려는 것은 일을 해내는 능력인가. 아니면 그 일을 만나기 전에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필요할 때 알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개발자가 모든 것을 알고 일한 적은 없다. 문서를 찾고, 동료에게 묻고, 처음 보는 개념을 배우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AI는 이 과정에서 설명과 탐색, 실험을 도울 수 있다.
어떤 버튼을 눌렀을 때 결과가 늦게 나타난다고 해보자. 처음부터 정확한 원인을 이름 붙여야만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현상을 AI에게 전달하고 요청 흐름과 가능한 원인을 살펴보게 할 수 있다.
낯선 설명이 나오면 다시 묻는다. 제안된 원인은 실제 로그와 측정으로 확인한다. 수정 후에는 원했던 결과가 나오는지, 그 작업에서 중요한 예외 상황을 다뤘는지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처음 배운 내용이 있어도 괜찮다. 관련 분야를 전부 공부한 뒤에야 작업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선택을 하고 결과를 확인할 만큼 파악했다면, 그보다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이유는 별도로 설명되어야 한다.
물론 AI를 쓴다고 누구나 같은 결과를 내지는 않는다. 설명의 핵심을 놓치거나 잘못 적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낯선 문제에서도 필요한 답을 빠르게 찾아 정확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능력은 바로 후자다. 이미 그 능력을 보여 준 사람에게, 처음 배우는 방식은 느릴 것이라는 가정만으로 낮은 평가를 줄 근거는 없다. 실제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개인의 수행과 정보·결정의 병목을 구분해야 한다. 필요한 기록이 없거나 조직의 판단을 기다리는 시간을 모두 개인의 학습 능력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꺼내 쓰는 능력뿐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필요한 답에 도달하는 능력도 평가해야 한다.
사람의 기억과 AI의 답에 같은 잣대를
“AI의 답이 틀리면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요하다. 다만 그 질문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사람의 경험도 현재 상황에 잘못 적용될 수 있다. 기억한 규칙이 오래됐을 수 있고, 익숙한 원인에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AI의 설명도 틀릴 수 있다. 어느 쪽의 판단이든 출처의 권위가 검증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성능을 개선했다면 비교 가능한 조건에서 실제 동작 시간을 확인한다. 기능을 수정했다면 요구사항과 관련 예외를 점검한다. 판단에 쓰인 근거가 부족하면 추가 확인을 한다. 이 과정에도 AI와 자동화된 검증을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을 완전히 검증할 수 없다는 한계 역시 양쪽에 적용된다. AI를 이용한 작업에는 완전한 증명을 요구하면서, 사람의 익숙한 판단에는 신뢰를 기본값으로 줄 수는 없다.
같은 잣대란 모든 작업에 똑같은 검사 목록을 적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결과에 요구하는 품질과 허용할 위험은 같아야 하지만, 실제로 드러난 오류 가능성이 다르면 검증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추가 검증의 근거는 AI 사용 여부 자체가 아니라 해당 작업의 위험이어야 한다.
결국 같은 업무와 제약에서 원하는 결과를 냈는지,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이후 수정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도구 비용과 다른 사람이 대신 수행한 검토도 포함해야 한다.
배우는 방식이 달라지면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사전 학습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 사용하는 지식은 미리 익혀 두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 지식으로 더 빨리 해결하거나,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거나, 팀이 함께 놓치던 오류를 찾아냈다면 그 기여를 평가하면 된다.
반대로 AI를 이용해 필요한 순간에 파악한 사람이 같은 수준의 성과를 반복해서 낸다면,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별도의 감점 사유로 삼기는 어렵다.
채용처럼 아직 충분한 성과를 관찰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예측을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 지식 질문도 실제 역할 수행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익숙한 질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수 자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를 허용한 과제와 비교해 무엇을 더 확인할 수 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새로운 요구를 주고, 조건을 바꿔 보고, 관련된 예외를 확인하게 하는 과정에도 AI를 허용할 수 있다. 평가하려는 것이 도구를 포함한 수행 능력이라면, 도구를 제거한 상태만으로 판단할 이유는 부족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역량을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면, 역할을 맡기고 조정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조직은 실제로 확인된 능력에 따라 새로운 역할에 도전할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배치 변경의 효과는 인계와 협업, 진행 중인 책임까지 포함한 전체 업무 결과로 확인해야 한다.
그 가능성을 익숙한 직무 구분과 평가 관행이 막고 있다면, 바뀌어야 할 대상에는 제도도 포함된다. 제약을 논하려면 어떤 규칙이 무엇을 막는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평가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 당사자에게 설명되지 않는 자의적인 인사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지식을 배운 시점과 경로는 성과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다. 그 자체가 성과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회사의 역사를 외우는 것이 기본기인가
특히 회사 안에서만 통하는 지식을 기본기라고 부를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특정 기능에 예외가 생긴 이유, 고객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업무 규칙, 과거 장애 때문에 남겨 둔 처리 방식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원래 알고 있을 수 없는 내용이다. 오래 일한 사람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개인의 기본기로 취급한다면, 재직 기간과 역량을 혼동할 수 있다.
이런 지식은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관련 작업을 시작하면 필요한 맥락이 제공되고, 현재 유효한 규칙과 결정 이유를 확인할 수 있으며, 중요한 위반은 검증에서 잡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서를 쌓아 두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문서가 존재하는지까지 후임이 외워야 한다면, 접근하는 방식부터 개선할 여지가 있다.
평소에는 그 규칙을 모르고 지내도 되고, 필요한 순간에만 찾아 적용해도 되는 업무라면 그렇게 일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된다. 필요한 내용을 찾고 적용하는 동안에도 중요한 제약이 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과정의 책임이다.
후임이 회사의 지식을 얼마나 외웠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선임이 그 지식을 얼마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는지도 봐야 한다.

성장은 후임에게만 부과되는 의무가 아니다
후임에게 성장을 요구하는 선임이라면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도구가 바뀌었는데 내가 일을 맡기는 방식은 바뀌었는가.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은 바뀌었는가. 사람의 능력을 확인하는 기준은 바뀌었는가.
“나는 이렇게 배웠다”는 말은 경험을 설명한다. 다음 사람도 반드시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근거까지 제공하지는 않는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면 필요한 순간에 그 설명이 제공되도록 만들 수는 없는가. 같은 실수를 지적하고 있다면 그 실수를 줄일 검증을 만들었는가. 후임의 부족함으로 설명해 온 문제 중 자신의 업무 설계로 줄일 수 있는 것은 없었는가.
물론 모든 예외를 자동화할 필요는 없다. 규칙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들고, 잘못된 규칙은 여러 사람에게 같은 오류를 반복시킬 수 있다. 어떤 것은 검증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문서와 원칙으로 남기고, 어떤 것은 개별 판단에 맡길지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도 실제 효과에 따라 수정해야 한다.
이 책임을 선임 개인에게만 지울 수도 없다. 조직은 개선할 권한과 시간, 공동으로 유지할 인력을 제공해야 한다. 기능 개발만 계속 우선시하면서 지식 공유와 프로세스 개선까지 개인의 여유 시간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후임은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책임이 있다. 선임과 조직은 반복되는 학습과 확인의 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고 개선할 책임이 있다. 후임의 학습 시간만 줄이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맥락을 제공하고 유지하는 비용까지 포함해 팀 전체의 부담이 줄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후임에게만 변화를 요구하고 자신의 교육과 평가 방식은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순간에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내고, 원하는 결과와 관련 예외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에게 왜 반드시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가.
그리고 후임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성장을 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 방식도 그 시대에 맞게 바꾸고 있는가.
성장은 후임에게만 부과되는 의무가 아니다.


